국가들의 경제통합
자유무역으로 후생 수준이 증가한다고 하지만, 완전한 자유무역을 시행하는 나라는 거의 없다. 자국 산업을 보호하고자 하는 유혹을 벗어나기 어렵기 때문이다. 상대국은 보호무역인데 자국만 자유무역을 하면 후생 수준이 오히려 하락할 수 있으므로 독자적으로 자유무역을 추진하기 어렵다. 자유무역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WTO 같은 국제기구를 통한 국제협력이 필요하다. 다자간 협상이 어려운 경우에는 몇몇 국가들이 경제통합을 형성하여 무역자유화를 추진하게 된다.
1. 경제통합의 형태
경제통합은 몇몇 국가들이 상호 협의하여 서로 간에 자유무역을 확대하는 것을 말한다. 가맹국 상호 간의 밀착 정도에 따라 통상적으로 자유무역지역, 관세동맹, 공동시장, 경제동맹의 네 가지 형태로 분류한다. 경제통합은 자유무역지대에서 출발하여 최종적으로는 경제동맹을 지향한다. 최종단계인 경제동맹은 가맹국들이 경제적으로 완전한 통합체가 됨을 의미한다. 자유무역지역은 가맹국 간에는 관세를 완전히 철폐하고, 역외 국가에 대해서는 가맹국 개별적으로 관세를 부과하는 형태의 경제통합이다. 예로는 NAFTA(North America Free Trade Area : 북미 자유무역지역)을 들 수 있다. 자유무역지역에서는 역외 국가에 대한 관세율이 가맹국마다 서로 다르기 때문에 비가맹국의 관세율이 낮은 국가로 수출한 후 이를 무관세인 다른 역내 국가로 재수출하는 부작용이 발생한다. 예를 들어, 자유무역지역인 NAFTA에서 미국의 관세율이 멕시코의 관세율보다 높으면, 역외 국가들은 멕시코로 수출을 한 후 이를 다시 무관세로 미국에 수출하고자 한다. 그러나 비가맹국 상품은 무관세의 대상이 아니므로 미국은 이러한 우회수출을 규제한다. 그러나 비가맹국 상품이라도 멕시코에서 재가공단계를 거치면, 무관세 대상이 될 수 있다. 무관세 대상이 되기 위해서는 역내 국가 부품이 사용비율이 일정 수준 이상이어야 한다. 역내 국가 부품의 사용비율에 대한 규정을 원산지 규정이라고 한다. NAFTA 결성 시 미국은 자동차 산업에 70%의 원산지 비율을 주장하였다. 미국에 무관세 수출을 목적으로 멕시코에서 제품을 생산하고자 하는 일본 회사들은 원산지 비율이 높으면 일본 부품을 충분히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멕시코에 투자를 꺼리게 된다. 멕시코의 입장에서는 원산지 비율을 낮추기를 원했다. 이처럼 원산지 비율에 대해 국가마다 의견 차이가 있고 합의가 쉽지 않다. 원산지 규정에 합의하더라도 가맹국 간의 국경을 통과할 때 무관세 여부를 가리기 위해 모든 제품의 국적과 부품 사용비율을 검색해야 하는 행정부담이 있다.
관세동맹은 자유무역지역보다 한 단계 더 밀착된 형태로 비가맹국에 대해서 공동관세를 부과한다. 제3 국에 대해 공동관세를 부과하면 가맹국마다 제3 국에 대한 관세율이 서로 달라서 발생하는 자유무역지역의 문제점을 해소할 수 있다. 그러나 어떤 상품에 어느 정도의 관세를 부과할 것인가에 대해 국가마다 이해가 서로 다르기 때문에 공동관세율 합의가 쉽지 않다. 관세동맹의 예로는 EU의 과거 형태였던 EEC(European Economic Community:유럽 경제공동체)와 남미에 있는 MERCOSUR(남미 공동시장)를 들 수 있다.
공동시장은 관세동맹에서 발전된 형태로 가맹국 간 생산요소의 자유로운 이동을 허용한다. 예를 들어, 노동자는 가맹국 내 어느 국가로든지 취업이 가능하며, 자본도 가맹국 내 국경을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다. 공동시장의 예로는 EU의 과거 형태인 EC(European Community:유럽공동체)를 들 수 있다.
마지막으로 경제동맹은 공동시장보다 발전된 형태로 가맹국 간 상호협조하에 재정금융정책을 시행한다. 경제동맹은 가장 밀착된 형태의 경제통합이다. 예로는 EU(European Union : 유럽연합)을 들 수 있다. EU는 초기 EEC에서 EC로, 그리고 다시 EU로 발전하였으며, 1999년에는 공동화폐인 유로 통화를 출범시켜 거의 최종적인 경제통합체를 구성하였다.
2. 경제통합의 후생 효과
경제통합으로 가맹국의 후생 수준이 반드시 증가하는 것은 아니다. 가맹국의 후생 수준이 오히려 감소할 수도 있다. 경제통합의 후생효과를 생산 측면과 소비 측면으로 구분하여 알아보자.
경제통합의 후생효과를 생산 측면으로 보면, 바이너는 관세동맹의 경제적 효과를 무역창출 효과와 무역전환 효과로 구분하여 설명한다. 무역창출 효과는 자국에서 생산하던 제품을 관세동맹 이후 보다 효율적인 가맹국 제품으로 대체하는 현상을 말하고, 무역전환 효과는 효율적인 제3 국 제품을 관세동맹 이후 비효율적인 가맹국 제품으로 대체하는 현상을 말한다. 무역창출 효과는 효율성을 제고하여 후생 수준을 증가시키지만 무역전환 효과는 효율성을 떨어뜨려 후생 수준을 감소시킨다. 경제통합 이후 무역전환 효과가 무역창출 효과보다 크면 가맹국의 후생 수준은 감소하게 된다. 관세동맹을 결성하면 가맹국 상품은 무관세가 적용되어 가격이 하락하게 된다. 후생 수준 변화는 생산과 소비가 효율적인 국가로 이동하는가 아니면 비효율적인 국가로 이동하는가에 의해 판단한다. 생산과 소비가 효율적인 국가로 옮겨가는 경우 후생 수준이 증가한다고 판단한다. 관세동맹 이후, 수많은 상품 중에서 어떤 상품은 무역 창출 형태로, 그리고 어떤 상품은 무역전환 형태로 생산과 소비가 바뀌어 갈 것이다. 무역창출 효과와 무역전환 효과 중 어느 것이 더 큰가에 따라 후생 수준이 증가할 수도 있고 아니면 감소할 수도 있다. 첫째, 서로 무역량이 많은 국가들 간의 관세동맹에서 후생 수준이 증가할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 제3 국과의 교역 비중이 작기 때문에 관세동맹 이후 제3 국에서 가맹국으로 수입선이 바뀌는 무역전환 효과의 가능성이 적다. 둘째, 관세율이 높은 국가의 관세동맹에서 후생 수준이 증가할 가능성이 크다. 관세율이 높은 나라의 경우 무관세가 된 가맹국 제품 가격이 크게 하락하므로 가맹국 제품을 수입할 가능성이 커진다. 즉 무역창출 효과의 가능성이 커서 후생 수준 증가가 기대된다. 셋째, 경제통합의 가맹국 수가 많을수록 가맹국들의 후생 수준이 증가할 가능성이 높다. 생산비가 낮은 국가가 가맹국에 포함되어야 무역창출 효과가 발생하는데, 가맹국이 많을수록 생산비가 낮은 국가가 경제통합 내에 포함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넷째, 산업구조가 서로서로 유사한 국가들 간의 경제통합에서 가맹국들의 후생 수준이 증가할 가능성이 높다. 흔히 경제통합 내 국가들의 산업구조가 보완적일수록 가맹국 간에 갈등이 적기 때문에 더 좋은 경제통합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보완적인 국가들 간의 경제통합에서는 무역전환 효과가 나타날 가능성이 커서 후생 증가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산업구조가 유사하고 경쟁적인 국가들 간의 경제통합에서 무역창출 효과가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산업구조가 유사한 국가들은 제품 구성이나 가격이 서로 비슷하기 때문에, 무관세로 제품 가격이 약간만 하락해도 가맹국 제품을 수입할 가능성이 커진다. 즉, 무역창출 효과의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가맹국들의 산업구조가 서로 상이한 경우에는 자국 제품과 가맹국 제품이 경쟁하기보다는 제3 국 제품과 가맹국 제품이 경쟁할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 무관세로 가맹국 가격이 낮아지면 생산비가 낮은 제3 국 제품 대신 가맹국 제품을 소비하는 무역전환 효과가 나타나므로 후생 감소 가능성이 커진다. 산업구조가 서로 보완적인 국가들 사이에는 수출 상품이 서로 중복되지 않으므로 무역마찰이 적은 편이다. 이 두 나라는 무역 마찰이 적기 때문에 경제통합의 효과가 긍정적일 것으로 생각하지만, 그렇지는 않다. 산업구조가 유사하고 서로 경쟁적인 국가들 간의 경제통합일수록 통합 이후 경쟁력 없는 제품은 도태되고 효율적인 제품의 생산과 수출이 증가하는 무역창출 효과가 더 나타난다. 여러 경제통합체 중에서 가장 성공적인 경제통합체인 EU는 가맹국들의 소득 수준이나 산업구조가 비교적 유사하다. 이러한 경쟁적인 산업구조가 EU가 경제통합체로 성공한 요인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관세동맹 이후에는 소비자 가격이 하락하므로 소비자들의 후생 수준이 증가한다. 따라서 무역전환 효과가 나타나더라도 반드시 후생 수준이 감소한다고 할 수는 없다. 무역전환 효과가 있을 때 후생 변화는 두 개의 상반되는 효과로 구성된다. 하나는 효율적인 제3 국 제품이 비효율적인 가맹국 제품으로 대체되어 나타나는 교역조건 악화 효과이고, 다른 하나는 수입재의 국내 가격 하락으로 인한 소비자의 후생 증가 효과다. 전자는 후생 감소를 가져오지만, 후자는 후생 수준을 증가시킨다. 무역전환 효과가 있더라도 소비 측면의 이익이 더 크면 후생 수준이 증가할 수 있다.
3. 관세동맹과 차선의 이론
관세동맹 이론은 립시-랜카스터에 의해서 주장된 차선의 이론과 관계가 있다. 차선의 이론은 모든 최적 조건이 달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몇 가지 조건이 더 충족된다고 해서 반드시 후생 수준이 증가하지는 않음을 말한다. 전 세게의 완전한 자유무역이 모두의 후생 수준을 극대화하는 최적 조건이다. 최적 조건이 아닌 두 가지 하위 조건을 생각해보자. 하나는 모든 국가가 서로 관세를 부과하는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몇몇 국가들이 서로 관세동맹을 맺은 경우이다. 두 경우 중 관세동맹은 몇몇 국가들이 서로 자유무역을 한다는 점에서 모두 관세를 부과하는 경우보다는 자유무역 조건을 더 충족하고 있다. 그러나 앞 절애서 보았듯이 관세동맹으로 가맹국의 후생 수준이 반드시 증가하지는 않는다. 이는 자유무역 조건의 일부 추가로 후생 수준이 반드시 증가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설명해준다. 이 점에서 관세동맹의 경제적 효과는 차선의 이론과 일치한다. 차선의 이론은 시장 자유화의 경제적 효과를 설명하는 데도 적용된다. 재화 시장, 자본시장, 그리고 요소시장이 모두 불완전한 개발도상국을 생각해보자. 일반적으로 시장 자유화는 자원배분의 효율성을 높여 후생 수준을 증가시킨다. 그러나 다른 시장이 불완전한 상태에서 한 시장만을 자유화하면 그 국가의 후생 수준이 반드시 증가하지는 않는다. 왜곡이 어려 곳에 산재해 있는 개발도상국에서는 한두 분야의 자유화를 추진한다고 반드시 후생 수준이 증가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개발도상국에서 자유화를 추진할 때는 그 졍책이 후생 수준을 증가시킬 수 있는지를 따져보아야 한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스티글리츠는 재화 시장과 요소시장의 불완전성이 존재하는 개발도상국에서 자본시장 자유화 정책은 다른 시장의 화곡을 심화시켜 오히려 후생 수준을 떨어뜨릴 수 있음을 지적한다. 이는 차선의 이론의 한 예이다. 차선의 이론은 경제여건에 따라 정책의 효과가 달라지기 때문에 그 효과를 일반화하기보다는 주어진 여건에 따라 그 효과를 반드시 따져야 함을 말해준다.
4. 관세동맹의 동태적 효과
관세동맹의 후생효과는 정태적 측면에서의 후생 변화이다. 즉, 관세동맹으로 재화 가격이 변함에 따라 나타나는 생산의 변화와 소비의 변화가 후생 수준에 미치는 효과를 평가하고 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나타나는 동태적인 측면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 관세동맹의 동태적 효과는 다음을 들 수 있다. 첫째, 관세동맹은 수출시장을 확대하므로 구모의 경제의 이익을 준다. 시장규모가 크지 않은 국가는 규모의 경제가 있는 산업을 육성할 수 없다. 그런데 경제통합으로 시장규모가 확대되면 시장규모가 작은 국가도 규모의 경제가 있는 산업을 육성할 수 있게 된다. 유럽의 개별 국가들은 경제규모가 크지 않지만. 이들 시장을 통합함으로써 미국과 비슷한 시장규모가 되었다. 역으로 미국의 주들이 독립국가처럼 나뉘어 있다면 미국의 산업들은 충분한 규모의 경제를 얻지 못할 것이다. 둘째, 관세동맹은 기업들의 경쟁을 촉진시켜 경쟁력을 높인다. 관세동맹으로 자유무역이 확대되면 보호를 받던 기업이 가맹국의 다른 기업들과 경쟁을 하게 되므로 기업들은 기술개발과 기술도입 등을 통한 비용절감 노력을 하게 된다. 비효율적인 기업은 퇴출되고, 경쟁력이 있는 산업으로 신규 투자가 확대되어 간다. 이와 같이 관세동맹은 기술진보를 촉진하고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여 경제성장에 기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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